연혁

신평양조장 연혁

1930~1940.

양조산업의 태동기 - 신평양조장 창업

1920년대 일제강점기 주세령 발표 이후 집에서 술을 빚어 전수되어 온 조선 가양문화가 말살되고 근대 양조장 산업이 시작됩니다.

1대 김순식 대표는 1933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신평양조장의 전신인 ‘화신양조장’을 창업합니다.

1950.

6·25전쟁과 전후 혼란기-시련 속 성장 6·25전쟁 반발

황해도지역에서 배를 타고 당진 해안가로 많은 북한 주민들의 피난행렬이 이어짐 당시 황해도의 양조 기술자가 양조장에서 숙식을 하고 일을 도우면서 개량누룩형태인 ‘입국’기술을 전수 이후 북한군이 당진지역을 장악하면서 신평양조장은 노동당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960~1970.

전후 국가 재건 운동기 - 지역사회의 중심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국가적으로 국가재건운동이 전개되었고 신평양조장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 각종 재건활동에 앞장섰습니다.

1970~1980.

새마을 운동과 막걸리 - 2대 김용세 대표 가업전수 

잘살아보세 노래가 아침마다 울려퍼지던 70년대에는 신평양조장의 전성기로 막걸리가 주류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시기였습니다.

2대 김용세 현대표는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기수르 양조장에서 익힌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신평양조장 양조기술의 전성기를 일구어 냈습니다.

막걸리 사양산업화 - 양조장 통폐합, 백련막걸리 개발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전통 양조장들은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진입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국가정책적으로 양조장 통폐합이 강제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 2대 김용세 대표는 변화된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술을 만들기 위해 ‘백련’을 술에 접목시키기 위한 연구를 10여년에 걸쳐 지속한 끝에 ‘백련막걸리’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1990~2000.

막걸리 산업의 부활 - 신평양조장의 새로운 도약 

백련잎을 발효과정에 첨가하여 고급스럽고 깔끔한 맛을 낸 백련막걸리와 백련 맑은 술은 소비자와 전문가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대한민국 명품주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009.

청와대 만창장 막걸리 선정

2012.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살균막걸리’ 부문 대상 수상

2013.

런던주류품편회(IWSC) Bronze 메달 수상
대한민국 유리술 품평회 ‘약주’부문 장려상 수상

2014.

백련 맑은술 대기업 사장단 만찬주 선정